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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press Hill

Cypress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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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엔가 나의 관심밖이였던 형님들 아니 소흘히 했던 것이 맞겠다..그래서!! 힙합명반이라는 곳에 묻혀져있던 글타래를 가져다 재탕하는 센스~ !! 

싸이프러스 힐은 1986년에 결성된 라틴-아메리칸 힙합그룹입니다. 캘리포니아 사우스케이트 출신이라고 하는군요.

멤버로는 싸힐  사운드의 핵인 디제이먹스(  68년 1.28일생 본명 Lawrence Muggerud,이탈리아계), 싸힐의 큰형님 션독(65년 11.20일생 Senen Reyes 쿠바계) 독특한 비음 랩핑을 하는 비리얼 (70년 6. 2일생 본명 Louis Freese) , 94년에 합류한 퍼커셔니스트 에릭보보(68. 8. 27일생 본명 Eric Correa) 가 있죠. 이들은 라틴랩그룹중 가장 먼저 플래티넘, 멀티 플래티넘을 앨범을 기록한 그룹이자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아치운 라틴랩아티스트죠.

이들의 데뷔때 부터 계속 주장해온 것이 있죠. 그것은 바로 마약의 합법화 인데요. 그들의 논리는 간단히 말해,합법화를 통해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마약과 그런 유통과정에서 일어나는 피해(살인 방화 등등..)가  마약복용자체로 인한 피해 보다 더크기 때문에 합법화를 한다면 그에따른 피해도 줄어들것이다 머 이런 것인데..  글쎄요 이건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것 같네요..

그룹 결성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면...

이들이 처음 결성 한것은 1986년입니다. 그당시에는 DVX라는 이름으로시작했죠.(션독의 친동생인

멜로우맨 에이스도 같은 멤버였죠.)

84년부터 디제잉을 시작한 먹스는  85년(또는86년)에 Julio G 통해 션독과 비리얼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이당시 벌써  션독 ,비리얼 ,멜로우맨에이스 이세명은 DVX라는 크루를 결성한 상태였죠.

그리고 먹스의 방에서 3곡의 데모곡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MY DJ AND THE SOLOIST"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3곡은 Trigga Happy Nigga, Cosa Caliente, LA's Strongest and Cypress Hills Gettin Funky 이라고 불렀고 그중에  Trigga Happy Nigga 는 후에 1집에서 How I Could Just Kill A Man 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던중 멜로우맨 에이스가 88년에 탈퇴를 하면서 팀이름을 자신들이 사는 거리이름을 따서 Cypress Hill 라고 바꾸게 됩니다. 그러면서 먹스는 7A3 이라는 그룹에 참여 합니다. 그러면서  러프하우스레코드의 Joe the Butcher에게 데모 테잎을 들려줄 기회가 생기는데 데모곡을 들은 조는 매우 좋아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드디어 소니/러프하우스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되고 옛 데모곡들과  Real Estate, Hand on the Pump, Pigs 와같은 신곡들을 추가 하여 1991년 대망의 셀프 타이틀 1집 싸이프러스힐이 나오게 됩니다.

첫 싱글컷된 Phuncky Feel One에 비사이드 곡인 How I Could Just Kill A Man 이 오히려 대학라디오방송에서 큰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런 싱글의 성공속에서 앨범도 미국에서만 200만장을 팔아치우고 92년에는 Lollapalooza 무대에도 서게됩니다.

그리고 93년 그들의 최대 히트작인 2집 블랙선데이가 발매되죠. 첫 싱글 " Insane in the Brain "은 말그대로 대박이였습니다. 325만장이라는 판매고 말해주듯 2집의 인기는 최고였습니다. 빌보드 200 차트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랩그룹으론 처음으로 두앨범 연속 빌보드200차트 탑텐에 드는 영예도 얻게 되죠.

또 그들은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전면에 내세운 첫번째 그룹이라는 타이틀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2집 활동당시 한 라이브방송에서 먹스는 실제로 마리화나를 마시고 또 공연중에 악기를 부시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펼쳐 Saturday Night Live 라는 방송에서 거절당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Soul Assassins"투어를 펼쳤는데 먹스가 프로듀싱을 한 하우스오브페인, 펑키두비스트가 서포트를 해줬고, 지역투어에서는 유명한 하드코어 락그룹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쉰 , Seven Year Bitch와 함께 했습니다.

또한 Judement Night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여 시애틀 4인방중 하나인 펄잼과 얼터너티브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닉유스 등과 함께 Real Thing, I Love Mary Jane곡을 불렀습니다.(참고로 이 O.S.T는 힙합과락/메탈을 섞은 소위 랩메탈이라고 잠시 회자됐던 장르가 가장 잘나타나있는 앨범입니다. 이 당시만해도 센세이션한 일이였죠...)

2집에서 엄청난 성공과 활발한 활동을 펼친 싸이프러스 힐은 드디어 1994 우드스탁 페스티벌 에서

제 4의 멤버 에릭보보-유명한 살사 뮤지션인 Willie Bobo의 아들이기도함-를 선보이게 됩니다.

95년에는 3집이 발매 되고 3집 역시 150만장 가량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싸이프러스 힐은 그 영광을 이어갑니다.